에세이역사 · 공화국과 제도

분열된 공화국: 한국은 프랑스 제3공화국의 길을 걷고 있나

1934년 파리의 거리와 2024년 이후 한국 정치가 함께 묻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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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tyCorpora Editorial
2026-06-09 · 18분 분량
한국 국회의사당과 프랑스 의회 건축이 어두운 하늘 아래 겹쳐 보이는 실사형 에디토리얼 이미지
분열된 공화국
두 공화국의 시간은 다릅니다. 다만 제도가 버티는 동안에도 신뢰가 닳아간다는 점은 비슷합니다.Source: LibertyCorpora AI-generated editorial cover.

바쁜 사람은 이것만

대한민국 정치는 2024년 말 비상계엄, 국회 탄핵,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2025년 조기 대선을 거치며 매우 압축적인 위기를 통과했습니다. 제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국회는 움직였고, 헌법재판소는 판단했고, 선거는 치러졌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내면 절반만 본 것입니다. 제도가 작동했다는 말과 사회가 그 제도를 믿는다는 말은 다릅니다. 지금 한국 정치의 불안은 바로 그 틈에서 나옵니다.

이 지점에서 프랑스 제3공화국이 떠오릅니다. 제3공화국은 1870년 제2제국 붕괴 이후 출발해 1940년 독일 침공과 비시 체제 수립으로 끝난 프랑스의 공화정입니다. 내각은 자주 바뀌었고, 좌우 갈등은 거칠었으며, 1934년에는 극우 단체와 시위대가 파리의 의회 주변에서 경찰과 충돌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프랑스는 산업화, 공교육, 전문 관료제도 키워냈습니다. 불안정했지만 오래 버텼고, 오래 버텼지만 결국 무너졌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프랑스 제3공화국의 전철을 밟고 있을까요?

닮았습니다. 하지만 똑같지는 않습니다.

프랑스 제3공화국의 병은 의회 과잉과 내각 불안정에 가까웠습니다. 반면 한국의 병은 대통령 권력의 과잉과 진영 정치의 과잉에 더 가깝습니다. 같은 “분열”처럼 보이지만 실제 위험의 모양은 다릅니다.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은 비관론이 아닙니다. 한국이 곧 1940년 프랑스처럼 무너진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은 같은 절벽을 향해 걷고 있다기보다 비슷한 경고판 앞에 서 있습니다. 경고판을 읽으면 피할 수 있습니다. 읽지 않으면, 좋은 제도도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승리한 프랑스는 평온하지 않았다

프랑스 제3공화국은 승리보다 패배에 가까운 기억에서 태어났습니다. 1870년 보불전쟁에서 나폴레옹 3세의 제2제국은 프로이센에게 패했고, 프랑스는 알자스-로렌을 잃었습니다. 더 쓰라린 장면도 있었습니다. 독일 제국은 1871년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에서 선포됐습니다.

프랑스 입장에서 이건 단순한 외교 행사라기보다 국가적 굴욕이었습니다. 자기 궁전에서 새로운 독일 제국의 탄생을 지켜본 셈이니까요.

1871년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독일 제국 선포 장면을 그린 회화
베르사유
1871년 베르사유의 장면은 프랑스 제3공화국이 어떤 상처 위에서 출발했는지 보여줍니다.Source: Wikimedia Commons, 1871 Proclamation of the German Empire.

이후 프랑스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꺾고 알자스-로렌을 되찾았습니다. 겉으로 보면 복수는 완성됐습니다. 하지만 전쟁에서 이겼다고 사회가 건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외부의 적을 이겼다고 내부의 갈등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프랑스 안에는 여러 개의 프랑스가 있었습니다. 공화파와 왕당파, 보나파르트주의의 잔당, 급진파와 사회주의자, 가톨릭 보수와 반교권 공화주의자가 같은 공화국 안에서 서로를 의심했습니다. 제3공화국은 사회 안정, 산업화, 전문 관료제의 확립도 함께 이뤄낸 체제였습니다. 하지만 정치만 보았을 때는 점차 대립이 과도할 만큼 심해져가고 있었습니다.

이 모순이 중요합니다. 나라는 돌아갈 수 있습니다. 경제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행정도 처리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치적 신뢰가 계속 닳으면, 위기 때 그 나라가 생각보다 느려집니다.

한국도 비슷한 역설을 안고 있습니다. 한국은 반도체, 조선, 방산, 배터리, K-pop 콘텐츠를 가진 큰 경제입니다. 행정 능력도 약한 나라가 아닙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도 승복은 끝나지 않고, 판결이 나와도 잡음은 지속되었습니다. 국가의 체급은 커졌는데, 정치 언어는 점점 좁아졌습니다.

1934년 2월 6일, 폭발은 갑자기 오지 않았다

프랑스 제3공화국의 불안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1934년 2월 6일을 빼놓기 어렵습니다. 파리에서는 우익 리그와 시위대가 하원 인근에서 경찰과 충돌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스타비스키 사건이 있었습니다. 알렉상드르 스타비스키는 지방채를 담보로 한 금융 사기를 벌인 인물이었고, 사건이 커지자 정권 주변 인사와 사법당국이 그를 비호했다는 의혹까지 번졌습니다. 이미 의회정치에 대한 냉소가 깊어져 있던 상황에서 이 스캔들은 “부패한 공화국”이라는 극우의 구호에 불을 붙였습니다. 1934년 2월 6일의 폭동은 결국 15명의 사망자와 1,435명의 부상자를 낳았습니다.

1934년 2월 파리 콩코르드 광장 주변의 폭동 장면
1934년 파리
정치적 분노가 의회 주변의 거리로 밀려나오면, 절차의 공간 자체가 공격 대상이 됩니다.Source: Wikimedia Commons, Émeute février 1934 place de la Concorde.

정치적 폭발은 보통 사건 하나 때문에 생기지 않습니다. 사건은 명분이 됩니다. 그 아래에는 오래 쌓인 불신, 경제적 불안, 제도에 대한 냉소가 있습니다. “의회정치는 썩었다”, “공화국은 나라를 지키지 못한다”, “강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말은 그런 환경에서 힘을 얻습니다.

한국의 2025년 서울서부지방법원 난입 사태와 1934년 파리를 곧장 같은 사건으로 놓을 수는 없습니다. 규모도 다르고, 사망자도 없었고, 역사적 조건도 다릅니다. 하지만 닮은 부분은 있습니다. 정치적 분노가 법원의 물리적 공간을 침범했다는 점입니다. KBS 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2025년 1월 서울서부지방법원 난입 사건과 관련해 63명을 기소했습니다.

민주주의에서 시위는 정상입니다. 거리의 정치도 때로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법원과 의회 같은 절차의 공간이 “정치적 적을 응징하는 장소”처럼 여겨지는 순간, 문제의 성격은 달라집니다. 그때부터는 정책 갈등이 아니라 공화국의 안전장치가 시험대에 오릅니다.

제도는 작동했다. 신뢰까지 회복된 것은 아니다

2024년 12월의 비상계엄 사태에서 한국 제도는 빠르게 반응했습니다. AP 보도에 따르면 국회에 도착한 의원 190명 전원이 계엄 해제 요구안에 찬성했고, 계엄은 몇 시간 만에 해제됐습니다. 이후 국회 탄핵, 헌법재판소 심판, 조기 대선이 이어졌습니다. 헌법재판소는 2025년 4월 4일 사건번호 2024헌나8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습니다.

이 대목은 과소평가하면 안 됩니다. 한국은 위험한 밤을 지나왔지만, 제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의회, 헌법재판, 선거가 모두 작동했습니다.

서울 여의도의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전경
국회
서울 재동의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청사 전경
헌법재판소
2024년 한국의 제도와 민주주의는 잘 지켜진 것처럼 보입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이죠.Source: Wikimedia Commons, National Assembly Building; Wikimedia Commons, Constitutional Court of Korea.

그러나 이것이 곧 신뢰 회복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제도는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그 결과를 받아들일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누군가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헌정질서 회복으로 봅니다. 다른 누군가는 정치적 판단으로 봅니다. 누군가는 조기 대선을 민주적 수습으로 봅니다. 다른 누군가는 상대 진영의 승리로만 봅니다. 결과가 같아도 해석이 갈라지면, 제도는 작동했지만 정치적 상처는 남습니다.

이게 지금 한국 정치의 핵심입니다. 한국은 제도가 없는 나라가 아닙니다. 문제는 제도가 있어도, 패자가 다음 선거까지 기다릴 수 있는지입니다.

분열된 정부의 그림자

전략 게임 Hearts of Iron IV에서 1936년 프랑스는 Disjointed Government, 한국어로는 흔히 “분열된 정부”라고 번역되는 국가정신을 안고 시작합니다. 정치력이 깎이고 안정성이 낮아져 전쟁 준비가 늦어지는 디버프입니다. 역사 교과서가 아니라 게임 밈이지만, 이 표현이 유독 오래 남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부 갈등이 깊어지면 국가는 망하지 않아도 계속 느려집니다. 지금 한국 정치에 이 밈이 불편하게 겹쳐 보이는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Hearts of Iron IV 프랑스 국가중점 트리 화면
HOI4 FRANCE
Source: Paradox Development Studio / The Armored Patrol, Hearts of Iron IV France development diary.

“분열된 정부”라는 말은 건조합니다. 정치학 교과서의 소제목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꽤 무서운 상태입니다.

여야가 싸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싸우라고 만든 제도입니다. 국회는 만장일치 박수부대가 아니라 공개적으로 싸우는 곳입니다. 진짜 문제는 상대를 협상 상대가 아니라 제거 대상으로 볼 때 생깁니다.

상대가 집권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믿는 순간, 정치는 정책 경쟁이 아니라 생존 게임이 됩니다. 우리 편 수사는 탄압이고 상대 편 수사는 정의가 됩니다. 우리 편 판결은 정치 판결이고 상대 편 판결은 법치의 승리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절차는 공동의 규칙이 아니라 진영별 해석 대상이 됩니다.

프랑스 제3공화국도 그런 피로를 쌓았습니다. 내각은 자주 바뀌었고, 거리의 압력과 의회의 불신이 서로를 밀었습니다. 그래도 행정은 돌아갔습니다. 경제도 한동안 버텼습니다. 바로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나라는 당장 멈추지 않으니까, 신뢰가 닳는 속도를 늦게 알아차립니다.

한국도 비슷한 위험이 있습니다. 2024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300석 국회 중 161석을 얻었고, 국민의힘은 90석을 얻었습니다. 대통령과 국회의 정치적 방향이 크게 어긋난 구조였습니다. 여기까지는 대통령제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충돌이 계엄으로 넘어갔다는 점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정쟁이 아니라 체제의 문제입니다.

외부의 적이 내부 정치를 먹을 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군사분계선을 바라보는 장면
판문점
한반도 정치에서 외부 위협은 언제나 국내 정치와 맞물려 움직입니다.Source: Wikimedia Commons, Panmunjeom DMZ.

프랑스 제3공화국에서 독일은 단순한 이웃이 아니었습니다. 독일은 패배의 기억이었고, 알자스-로렌의 상실이었고, 복수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외부 위협이 강하면 내부 정치도 그 그림자 아래 놓입니다. 누가 더 애국적인가, 누가 더 강경한가, 누가 나라를 팔아먹는가 같은 질문이 정치의 중심을 차지합니다. 그러면 정책 논쟁은 빠르게 도덕 심판이 됩니다.

한국도 지정학적으로 조용할 수 없는 나라입니다. 북한이 있고, 중국이 있고, 일본과의 역사 문제가 있으며, 미국 동맹도 있습니다. 안보는 한국 정치의 상수입니다. 이것을 가볍게 보면 안 됩니다.

그러나 안보가 중요하다는 말이 모든 반대자를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차이를 놓치면 국가는 내부 체력을 잃습니다. 처음에는 지지층 결집에 도움이 됩니다. 그 다음에는 타협이 불가능해집니다. 마지막에는 실제 위기 때 국민을 하나로 묶기 어려워집니다.

프랑스에서 독일 공포는 극우 민족주의와 결합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북한 위협과 반공 정서가 국내 정치의 도구로 쓰이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문제는 외부의 적 그 자체가 아닙니다. 외부의 적을 빌려 내부의 절반을 적으로 만드는 정치가 문제입니다.

경제가 흔들리면 정치의 할인율은 올라간다

부산 컨테이너 터미널에 컨테이너와 선박이 보이는 장면
부산항
한국의 산업 체급은 커졌지만, 성장 둔화와 생활비 부담은 정치 갈등의 배경으로 남습니다.Source: Wikimedia Commons, Busan Container Terminal 2006.

경제가 좋을 때 사람들은 조금 더 관대합니다. 일자리가 늘고, 집값이 감당 가능하고, 다음 세대가 지금보다 나아질 것 같으면 정치 갈등도 어느 정도 흡수됩니다. “그래도 먹고살 만하다”는 말은 사회의 완충재가 됩니다.

그 완충재가 얇아지면 정치 언어는 거칠어집니다.

프랑스는 대공황의 충격을 상대적으로 늦게 받았지만 결국 피하지 못했습니다. 노동자와 농민의 불만은 커졌고, 좌우 정권은 서로의 정책을 뒤집었습니다. 좌파는 노동권을 말했고, 우파는 질서와 긴축을 말했습니다. 각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모두가 자기 말만 맞다고 믿을 때 생깁니다.

한국도 경제 체급은 크지만 체감 경제는 편하지 않습니다. KDI는 2026년 한국 경제가 반도체 수출 호조와 내수 개선으로 2.5% 성장한 뒤, 2027년에는 1.7% 수준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성장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저성장, 고령화, 가계부채, 지역소멸은 정치적 불안을 키우는 장기 변수입니다.

이런 시기에는 정치가 더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로 움직이기 쉽습니다. 지지층은 더 단단해지고, 상대 진영은 더 위험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기업으로 치면 이렇습니다. 현금흐름이 줄어드는 회사에서 이사회가 매일 싸우면, 투자자는 그 회사를 할인합니다. 국가도 비슷합니다. 좋은 산업을 가진 나라라도 정치 리스크가 커지면 신뢰의 할인율이 올라갑니다.

프랑스는 의회가 흔들렸고, 한국은 대통령이 너무 무겁다

프랑스 팔레 부르봉 하원 회의장에서 연설하는 의원의 역사 사진
팔레 부르봉
제3공화국의 불안은 거리뿐 아니라 의회 안에서도 반복됐습니다.Source: Wikimedia Commons, Chambre des députés hemicycle.

여기서 프랑스와 한국을 반드시 구분해야 합니다. 둘 다 분열을 겪었지만, 위험의 구조는 다릅니다.

프랑스 제3공화국은 의회 중심 체제였습니다. 대통령은 있었지만 실질 정치는 의회와 내각이 좌우했습니다. 연합이 깨지면 정부가 바뀌었고, 총리는 자주 교체됐습니다. 프랑스의 문제는 총리가 너무 쉽게 바뀌었다는 데 있었습니다.

한국은 다릅니다. 한국은 대통령제 국가입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면 행정부 인사, 외교안보, 예산 방향, 권력기관과의 관계, 산업정책, 대북정책, 대일정책까지 권력의 큰 축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한국의 대선은 단순한 정권 선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거의 국가 운영권 전체를 건 싸움처럼 느껴집니다. 이기면 모든 것을 가져가고, 지면 모든 것을 잃었다고 느낍니다.

이 구조에서는 패자가 기다리기 어렵고, 승자가 절제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식 분열의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프랑스 제3공화국은 내각이 너무 자주 바뀌어 문제였고, 한국은 대통령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기대와 공포가 몰려 문제입니다.

프랑스는 잘게 쪼개졌고, 한국은 둘로 굳었다

프랑스 제3공화국은 정치 세력이 잘게 쪼개졌습니다. 공화파 안에도 여러 갈래가 있었고, 왕당파와 보나파르트주의자, 급진파와 사회주의자가 뒤섞였습니다. 합의가 어려운 이유는 너무 많은 조각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은 다릅니다. 한국은 큰 틀에서 양당 구도가 강합니다. 제3지대가 등장하기도 하고 신당이 생기기도 하지만, 실제 권력 경쟁은 대체로 민주당계와 보수정당계의 대립으로 돌아갑니다.

겉으로 보면 한국이 더 안정적이어야 합니다. 큰 정당이 둘이면 협상이 쉬울 것처럼 보이니까요.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큰 정당이 타협의 그릇이 아니라 진영 전쟁의 플랫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는 너무 많이 쪼개져서 합의가 어려웠습니다. 한국은 너무 크게 둘로 굳어서 합의가 어렵습니다. 결과는 비슷합니다. 상대와 타협하면 배신자가 되고, 상대 말을 일부 인정하면 내부에서 공격받습니다.

그러면 정치인은 합리적으로 행동합니다. 타협하지 않는 겁니다. 개인에게는 생존 전략일 수 있습니다. 국가에는 비용입니다.

선거관리 신뢰라는 마지막 안전핀

정치는 결국 절차입니다.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올 때만 절차를 믿는 것은 신뢰가 아닙니다. 그건 편의입니다.

그래서 선거관리 신뢰는 매우 중요합니다. 선거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절차를 믿을 수 있어야 다음 선거까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선거 투표함
투표함
절차 신뢰는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진짜 시험을 받습니다.Source: Wikimedia Commons, Korean ballots box.

2026년 6월 지방선거에서는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Asia Business Daily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7개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이 있었고, 22개 투표소에서 투표가 일시 중단됐다가 재개됐다고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숫자 자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런 행정 실수가 이미 불신이 쌓인 사회에서 어떻게 읽히느냐입니다.

실수는 실수일 수 있습니다. 과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볍게 넘겨도 안 됩니다. 불신이 쌓인 사회에서는 모든 실수가 음모론의 연료가 됩니다. “착오였다”고 말해도 믿지 않고, “조사하겠다”고 해도 믿지 않고, “결과에는 영향이 없다”고 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제도는 종이 위 조항으로만 작동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그 제도를 믿어줄 때 작동합니다. 선거관리위원회, 법원, 헌법재판소, 국회, 언론, 수사기관의 신뢰가 동시에 흔들리면 국가는 멀쩡해 보여도 내부 리스크 프리미엄이 올라갑니다.

한국은 같은 절벽이 아니라 비슷한 경고판 앞에 있다

프랑스 쇠넨부르그 마지노선 요새 입구
마지노선
1940년의 붕괴는 정치 분열 하나로 설명할 수 없지만, 위기 대응 능력에 대한 질문을 남겼습니다.Source: Wikimedia Commons, Ligne Maginot Schoenenbourg.

그렇다면 한국은 프랑스 제3공화국처럼 무너질까요? 단순하게 말하면,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하지만 안심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국과 프랑스 제3공화국은 닮은 점이 있습니다. 좌우 진영의 감정적 적대가 큽니다. 외부 위협이 내부 정치와 결합합니다. 경제 불안이 정치적 극단화를 키웁니다. 거리의 정치가 제도정치의 권위를 흔들 수 있습니다. 부패, 사법, 언론 이슈가 도덕적 내전으로 번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차이점도 큽니다. 한국은 대통령제입니다. 제3공화국 프랑스식 내각 불안정과는 다릅니다. 한국은 1987년 이후 탄핵, 정권교체, 헌법재판, 대규모 시민 동원, 평화적 선거를 반복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제도를 써본 경험이 있습니다.

한국은 글로벌 공급망에 깊게 들어간 제조업·기술 국가입니다. 정치가 흔들려도 산업의 관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안보 리스크는 크지만, 프랑스 제3공화국이 1940년에 맞닥뜨린 유럽 대륙의 군사 조건과도 다릅니다. 독일은 1940년 5월 10일 프랑스와 저지대 국가를 침공했고, 브리태니커가 정리하듯 6주 남짓한 시간에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제압하고 파리를 점령했으며 프랑스 정부의 항복을 이끌어냈습니다.

한국은 그 장면을 그대로 반복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니 “한국은 곧 무너진다”는 말은 지나치게 쉽습니다. 반대로 “제도가 한 번 버텼으니 이제 괜찮다”는 말도 지나치게 쉽습니다.

현실은 그 중간입니다. 한국은 위험했지만 버텼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다음 위기 때도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입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청사 전경
법원
절차의 공간은 정치적 분노를 처리하는 장소가 아니라, 그 분노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기도 합니다.Source: Wikimedia Commons, Seoul Seobu Local Court.

결론: 한국은 전간기 프랑스의 행보를 반면교사로 삼아 비슷한 운명을 피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프랑스 제3공화국을 닮았습니다. 정치적 양극화, 제도 불신, 외부 위협, 경제 불안, 거리의 정치, 사법과 언론을 둘러싼 진영전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프랑스 제3공화국과 다릅니다. 한국은 대통령제이고, 1987년 이후 민주주의의 실전 경험을 쌓았습니다. 시민사회와 산업구조도 다릅니다. 무엇보다 2024년 계엄 위기 이후 제도는 일단 작동했습니다.

이건 작은 일이 아닙니다. 다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제도는 작동했지만, 신뢰는 자동으로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선거는 치러졌지만, 승복의 문화는 약합니다. 판결은 내려졌지만, 판결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기반은 흔들립니다.

공화국은 투표함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공화국은 패자가 다음 선거를 기다릴 수 있을 때 유지됩니다. 승자가 모든 권력을 다 쓰지 않을 때 유지됩니다. 군과 사법과 언론이 진영의 도구가 되지 않을 때 유지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가 나왔을 때도 절차를 인정할 수 있을 때 유지됩니다.

프랑스 제3공화국은 오래 버텼습니다. 그러나 오래 버틴다는 말과 건강하다는 말은 다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한 번 버텼습니다. 이제 문제는 그 경험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다음 위기 때도 버틸 수 있게 제도를 덜 소모하는 일입니다.

좋은 나라가 언제나 좋은 정치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좋은 제도도 방치하면 계속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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